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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함의 임계점을 넘은 상태는 또 다른 창조의 시작이다.

 

은별 작가

 

나는 누구인가?

1세대 단색화가들이 6.25전쟁, 5.18 항쟁, 87민주화 항쟁 등에서 오는 사회적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자기 수행의 정신을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의 당시 예술세계를 지배했던 트렌드를 반영한 미적 모더니티의 세계를 만든 것이 단색화라면 나의 경우 88만원 세대가 겪어야하는 사회적 아픔의 치유를 담고 있다. 이전 세대가 겪었던 보릿고개나 전쟁 등의 아픔은 없으나 ‘88만원 세대’라는 책에 쓰인 것처럼 치열한 경쟁을 뚫고 취업을 해도 95%가 비정규직이며 세금을 제하면 88만원이 된다는 사회적 불안감이 나와 주변인들에게는 심각한 생존의 고민이다. 이런 시대적 불안감은 인문학 열풍을 가져왔으며 자기의 내면을 바라보고 자가 치료를 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정신병적 사회의 현상이 생겼다. 이 현상은 ‘N포세대’에도 연결이 되며 아직도 진행형으로 보여진다.

2007년 88만원 세대와 2015년 N포 세대의 한숨이 깊어지는 시대의 중심에 서있는 80년생인 나는 작업을 통해 이 시대의 화두를 해결해보려 노력하고 있다.

 

우선 많은 영감을 제공해 주신 1세대 단색화가님들께 감사를 드린다. 어떤 학문이든 선행 연구의 토대위에서 출발 할 수 있다는 것은 무한한 영광이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선배님들의 깊은 고민과 수많은 땀방울로 만들어진 작품들을 대하면서 형언할 수 없는 깊은 감동과 감사함을 느낀다.

 

1세대 단색화 선배님들의 작품에서는 순수한 자기성찰의 시간이 흘러가고 있음을 느낀다. 이 순수함은 후설이 얘기하는 현상학적 순수보다는 한국적이며 동양적인 정신이 내재되어있는 순수함으로 판단된다. 현상학적 순수라고 하는 것은 아무것도 섞이지 않은 상태이며 근원적인 상태를 말하는 것이지만 동양철학에 두루 나타나는 무위자연(無爲自然)적인 순수가 자가 치유를 위한 과정에서 당연히 들어와야 하는 것으로 보인다.

70-80년대는 사회의 어지러운 상황 속에서도 경제 발전을 통한 외형적 변화가 있었던 시기이다. 이 시기는 이념이나 정치적 사회적 불안감, 불만을 다스리는 것이 필요하지만 그 분노의 끝이 경제적 생존에 닿아있지는 않았다. 반면 과거에 비하면 눈부신 경제 발전을 한 시대의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80년대 이후 출생자들은 유년기와 청소년기에는 남부러울 것 없을 정도로 잘 살았지만 막상 성인이 되어 사회로 진출하려는 시점부터는 엄청난 대입 경쟁률과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마땅한 직장이나 생존 수단이 없는 부유 속에 빈곤을 처절하게 겪어야하는 세대로 전락하였다. 성인이 될 무렵 닥쳤던 1997년 IMF구제금융사태와 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건으로 시작된 세계금융위기는 경제적인 삶의 질을 모두 망가트리고 결혼이나 미래의 희망을 모두 없애버렸다. 88만원 세대와 N포 세대는 성장하며 느꼈던 풍요와 대비되는 자신의 현실에서 감당하기 힘든 상실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내 주변에는 아직도 결혼을 뒤로 미루거나 포기한 친구들이 많다. 또한 결혼을 했어도 자식을 낳길 꺼리는 친구들이 많다. 이 사회 현상에 대한 문제의식이 나를 단색화의 범주에 집어넣는 계기가 되었다.

 

순수해지려는 노력과 순수함의 씨앗

숨 막히는 각박함 속에서 느껴지는 스트레스를 감당하다보면 어쩔 수없이 비워내고 버리고 던져내야 하는 것들이 생긴다. 1세대 단색화가들의 문제의식과 해법과는 다르지만 어찌할 수 없는 견고한 문제의식을 대하는 태도는 동일 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시대를 대하는 태도는 견고함에 대비되는 해체의 수순을 밟게 만들었다. 나를 해체하고 버리고 던지며 내가 가지고 있던 많은 인위를 버리라한다. 버리고 비워내면 순수한 원자의 상태가 되고 그 원자의 알갱이에서부터 출발하는 평안함과 진실 됨이 무위자연의 상태를 경험하게 하는 것 같다. 무위자연의 상태를 미술이라는 범주로 집어넣는 과정에서 나는 수없이 많은 낙서를 했었다. 마치 초현실주의의 자동기술법처럼 무의식의 상태에서 자동으로 작동되는 어떤 선과 면과 형태를 접하게 되었다. 이는 내가 의도한 것이 아니고 그저 반복적인 행위를 통한 나를 다스리는 해법이었다. 초현실주의의 자동기술법이 ‘이성에 의한 일체의 통제 없이, 또는 미학적, 윤리적인 일체의 선입견 없이 행하는 사고의 진실을 기록하는 것’이라는 정의를 의식도 없는 상태에서 그저 행위로 나타내었다. 그 행위의 결과들이 어느 순간 나를 일깨워 주었다. 바라는 마음이 없는 상태에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반복적으로 하다보면 어떤 것이 오히려 얻어진다는 것을.

 

미학을 공부하던 큐레이터과 학생이 화가로 나서기

미학을 공부하던 시절 사회적 불안감은 나를 낙서의 세계로 이끌었고 이 낙서들의 흔적은 서서히 작품으로 진행되었다.

 

낙서를 통한 무의식의 세계와 비움의 아름다움을 경험했었다. 형체도 없이 손가는 데로 한참을 긋다보면 어느새 A4용지의 흰 낯빛이 사라지고 그저 시커먼 흔적들로 빽빽한 검은 종이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검게 변한 종이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은 형용하기 어려운 어떤 미가 있지만 이는 제작자에게 국한되어있음을 알게 되었다.

낙서화를 그리면서 안정되어가는 나를 발견하였지만 사회의 현상은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내안의 문제를 줄이고 버리고 비워내도 사회에서 덮쳐오는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집안을 정리해도 문 밖의 환경이 변화가 없음으로 해서 생기는 스트레스는 매일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진행형이었다.

순수함이 주는 행복을 알고 있었으나 반복되는 비순수의 환경을 낙서라는 나의 도구로 해결하기 버거웠으며 나만의 문제로 간주 할 수 없음을 결국 알게 되었다.

 

낙서에서 작품으로의 변화

작품이 되어야한다는 의식이 생긴 것은 어느 순간이었다. 아르키메데스가 ‘나에게 견고한 지렛대를 주면 지구도 들겠소.’라고 말한 아르키메데스 포인트처럼 실제는 존재하거나 할 수 없어도 어떤 불합리한 것을 타개하려는 가능성을 바라보는 노력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꼈다.

크고 어려운 문제는 큰 해법이 필요하듯이 이 시대의 문제는 나를 비우는 것으로만 해결될 수 없음을 느꼈다.

 

낙서를 통해 얻은 깨우침을 치유라고 설정하고 치유 이후의 새 살이 돋아 나와야함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디오니소스의 도취처럼 몰입이 강열하여 개별성을 깨뜨리고 객관화하여 쓰러질 정도로 몰입하는 고도의 집중력과 끈기가 있는 작업이 필요했다. 또한 동일성과 비동일성이 주는 차이 속에서 새로운 살이 돋아 나오는 에너지를 확보하려 하였다. 그 고민의 시간들이 결과물 없이 흘러가는 것 같았으나 내부에서 움직이는 수많은 고민들이 어느 날 물꼬를 텄다. 지방으로 출장을 가는 날 아침 기차의 차창 밖으로 모이는 풍경은 온통 흰색으로 덮인 설경이었다. 오후에 서울로 돌아오는데 동일한 지역의 밭의 풍경이 변해 있었다. 밭고랑 마다 햇빛을 받은 부분은 눈이 녹아 짙은 흙색이었고 햇빛을 못 받은 부분은 그대로 흰색이었다. 이 풍경은 순수함 위에 더해진 에너지였으며 이것이 내가 그토록 찾던 ‘순수함의 임계점을 넘은 상태는 또 다른 창조의 시작이다.’ 라는 것을 느꼈다. 눈이 녹고 새 살이 돋고 그 위에 새로운 생명과 세상이 펼쳐진다는 것을 느낄 때 치유를 넘어 생명을 느꼈다.

 

치유 위에 생명과 에너지라는 화두를 표현하기 위한 다각도의 아이디어를 실험해보았다. 치유는 행위적인 것이 더 적합함을 알고 있었으나 생명과 에너지는 무엇이 적합한지를 알기 어려웠다. 실험을 거듭하다가 형성된 결과가 ‘접점’임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임계점의 직전까지 액체이었던 것이 임계점을 넘는 순간 기체가 된다. 접점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지만 그 상태 속에는 무한한 에너지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작품의 방법적 방향은 접점으로 정했다.

공간이면서 비공간이며, 동일하면서 비동일이고, 회화이면서 입체이며, 은유이면서 직설인 공존과 비공존의 세계 속에서 새로운 창조의 에너지를 발견하고 발산해야 함을 화면으로 구성하였다. 또한 작품이 살아있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관람자의 위치가 변하면 작품의 보이는 형상도 변하는 구성을 꾀하였다. 이는 관람자를 통한 우연과 필연의 충돌에서 형성되는 조화의 구조를 나타내는 것이고 존재와 비존재, 음과 양, 충만과 부족 같은 충돌적 대립적 요소들의 동양적 시공 속에서 하나의 조화를 엮어내는 방식을 표현한 것이다.

 

무엇으로 새로운 세상을 보여줄 것인가?

질료는 작품을 만들 때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질료가 주는 시사성이 매우 강하므로 나의 생각을 나타내고 덮어주고 보듬으며 나와 남이 소통하는 교량의 역할을 할 질료를 선택함은 매우 신중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무위를 상징하는 재료를 찾다가 이면지를 떠올렸다. 사용하고 남은 이 종이는 어떤 순간에는 매우 중요한 의미와 가치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엄청난 규모의 계약서일수도 있고 누군가의 비밀스러운 일기일수도 있다. 그 종이들이 담고 있는 가치는 매우 중요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사용할 당시에는 모두 각각의 가치가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것을 인위라고 생각했다. 인위를 무위로 돌리는 과정이 버리고 비우며 해체되는 것이라면 의미가 잔득 담겼던 서류가 해체되고 종이죽이 되며 원초적인 펄프의 상태로 돌아간다는 것은 나의 의식을 옮기는 재료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면지를 펄프의 상태로 돌리는 과정이 무위로 가는 과정으로 생각했다. 펄프 상태의 종이죽을 만들고 이들을 정연한 간격의 에너지 분출선 위에 나열을 한다. 이 정연한 에너지 분출선들은 비슷한 모양으로 나열되지만 그 나열의 끊김과 이어짐의 조합으로 형태가 나타난다. 공간들의 조합이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고 희망을 담을 수 있도록 숨길을 열어준다.

종이죽을 캔버스에 붙일 때 나이프의 날을 이용하여 다져서 붙인다. 칼날을 이용하여 붙이는 이유는 세상의 압박에 대한 상징이며 삶을 살아온 결을 표현한 것이다. 매우 순수하고 부드러운 이면지의 펄프와 시퍼런 날이 살아있는 나이프의 만남으로 극단적 대비가 이루는 동양적 정신을 표현하였다.

음양이 만나 새로운 창조가 있듯이 극단들이 만나는 접점에서 나는 계속 새로움을 생각하고 창조하려한다. 더불어 순수함으로 다가가는 지난한 시간들을 버티고 다시 새로운 창조의 시간으로 가는 잉태의 고통이 88만원 세대와 N포세대를 대변하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무한한 에너지임을 보여 주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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